WINTER PILOT PROGRAM
2017년 2월 1일부터 2월 23일까지 진행된 이번 BeST Winter Program은 앞으로 5년간 이어질 CAMPUS Asia BeST 지역전문가 양성 프로젝트의 방향을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수용해야 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인 만큼 전반적으로 학생들이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프로그램을 채워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구성되었습니다.
이번 BeST Winter Program은 2017년 2월 1일 (수) 부터 15일 (수) 까지는 서울대학교에서, 2월 16일 (목) 부터 23일 (목) 까지는 동경대학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서울 프로그램에서는 서울대학교 학생 13명, 북경대학교 학생 14명, 동경대학교 학생 9명 총 36명이 참여했습니다. 세 학교의 학생들은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한편 자유전공학부 교수님들이 진행하는 주제탐구강의를 들으며 팀 별 발표의 주제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2월 10일 (금) ~2월 11일 (토) 에는 1박2일간 파주로 현장학습을 떠나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함께 생활하고 밤늦게 깊은 대화를 나누며 더욱 친해졌습니다. 2월 11일 (토) 아침에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읽고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하며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 이후에는 파주 비무장지대 방문을 통해 한반도의 팽팽한 긴장을 실감하고 국경의 의미와 지위, 통일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2월 13일 (월) 에는 서울에서의 마지막 공식 프로그램인 학생 팀 별 발표회가 열렸습니다. 처음 만난 날부터 팀원들과 고민해온 주제로 아홉 팀이 각각 개성 넘치는 발표를 했고 짧은 토의를 끝으로 서울 프로그램을 마무리했습니다.
세 학교의 학생들은 공식 일정 외의 시간에도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며 진정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서울에서는 팀별 자율활동 시간과 자유시간에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호스트하는 서울 탐방을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도쿄에서는 동경대학교 학생들이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 국회, 일본 황궁 탐방, 오오에도 온천 체험을 호스트해주었습니다. 또한 동경대학교 학생들은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도쿄 여행 첫날 숙소에 체크인할 때부터 마지막날 공항에 가는 길까지 함께하며 깊은 우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BeST Winter Pilot Program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세 학교는 앞으로 진행될 BeST 지역전문가 양성 프로젝트에 더욱 큰 기대를 걸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긍정적인 결과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짧은 2월 동안 서울대학교, 북경대학교, 동경대학교 세 학교의 학생들이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을 자료집으로 엮었으며 아래 그 일부를 소개합니다.
– 2016 The BeST Winter Program 자료집 총괄 이제준(학생설계전공 생산공학, 전공자유전공학부 13학번)
정소영
파주 출판도시에 위치한 호텔 ‘지지향’에서 2월 10일 오전에 한중일 학생들은 독서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독서 토론의 주제가 되는 책은 ‘돌베개’에서 출판한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 였습니다. 한중일 학생들은 토론이 있기 며칠 전에 각각 자국의 언어로 번역된 백범일지를 받아서 읽기 시작했고, 토론 시간에는 책 전체 중 가장 마지막 장 ‘나의 소원’을 뽑아 그 부분과 관련하여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았습니다.
토론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소주제 1: 한중일 삼국은 김구 를 얼만큼 다르게 바라보는가?
한국 사회에서 교육받길, 김구는 대한민국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여 일제에 맞선 독립투사이며 광복 이후에는 통일된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한 애국자입니다. 그러나 일본 학생들은 그를 테러리스트라고 배웠으며, 책 ‘백범일지’의 대목 중 김구가 무고한 일본인 병사를 살해하고 제국주의와 관련이 없는 일본인을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증오하며 ‘왜놈’이라고 비하하여 부르는 장면들로 인해 김구의 민족주의는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 학생들은 그 동안 애국이라고 생각해왔던 김구의 행동이 다른 국가의 입장에서는 극단적인 민족주의라고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학교에서 김구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중국 등지에서도 활동한 적이 있다는 정도로 배웠다고 언급했습니다.
소주제 2: 김구의 민족주의, 즉 혈통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는(primordial nationalism) 김구 당시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리고 오늘날 보았을 때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일본 학생들은 김구의 민족주의는 김구 당시와 오늘날 모두의 관점에서 지나친 민족주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 학생들은 김구 당시에는 한국인들을 단결시켜 독립을 도모하기 위한 하나의 사상적인 구심점이 필요했고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바로 민족주의라서 김구의 민족주의는 불가피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혈통에 기반한 민족주의는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다른 그룹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민족의 개념이 영원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조심해야 하는 이데올로기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중국 근대사에서 또한 자국의 독립을 되찾는데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이용되었으며 이는 외국 군대에 맞서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동경대학교에 재학 중인 벨라루스 국적의 학생이 김구의 민족주의를 두고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는데, 김구가 책에서 독일식 극단적 민족주의, 즉 나치즘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일본인을 무조건적으로 증오하는 것이 모순적이라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김구의 행동을 나치즘에 대응하는 것은 한국 학생들의 입장에서 충격적인 비유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삼국의 학생들은 김구 당시의 민족주의와 관련해서는 의견을 달리했지만 공통 의견을 갖게 된 지점은, 현대에는 김구의 민족주의가 아닌 다른 사상이 필요하며, 그를 통해 같은 그룹 내의 단결을 도모하면서도 서로 다른 그룹들끼리는 최대한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주제 3: 현대 사회에서는 같은 민족 안에 누구를 포함시켜야 하고 누구를 제외시켜도 되는가?
이 소주제에서는 한중일 각 국가의 민족과 관련한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북한 사람들을 포함한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 민족들을 한국인 그룹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 학생들은 가령 재일 교포가 일본 사회 내에서 핍박을 받는 다고 하면 한국 정부는 그들이 한국 시민이 아니더라도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에 대한 주된 이유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찾았습니다. 대다수의 재일 교포들은 일제 강점기 동안 강제 이주된 한국인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외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또한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당연히 한국인이지만 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 통일은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친 교육 때문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동경대에 재학중인 벨라루스 국적의 학생이 남한과 북한을 두고 ‘한 집에 살기 싫어하는 형제들’이라는 흥미로운 비유를 꺼냈습니다. 그 학생이 속한 나라의 주변국들에는 우크라이나, 크로아티아 등이 있는데 모두 슬로바키아 민족이고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믿으면서도 그저 다른 집에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국가를 형성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민족이 같고 서로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상황 하에서도 각자 다른 국가를 수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한국 학생들에게 매우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중국의 경우 소수민족과 관련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거의 단일 민족인 한국과 일본과 달리 중국은 56개의 서로 다른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중국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유지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 학생들은 하나의 나라가 되고자 노력하는 게 아니라 원래 하나의 국가라서 동일한 역사 교육과 경제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중국 역사에 따르면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청 왕조 이래로 소수민족과 한족은 하나의 나라를 형성해왔다고 합니다. 하나의 중국인 역사가 길기 때문에 중국 학생들은 현재에도 중국이 하나의 국가이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때때로 보도되는 소수민족의 독립 운동과 관련하여 한 나라의 구성원이 그 나라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있는데 미래에도 하나의 중국으로 유지되는 것이 가능하느냐고 묻자, 중국 학생들은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주장하는 데에는 진정으로 독립을 위하는 것보다 중국 정부를 대상으로 더 많은 정치적 및 경제적 권리를 얻어내기 위함이 더 크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그러한 보도를 주로 다루는 저널리즘은 서양의 외신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하나의 중국을 저지하려는 외부세력들 또한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언론에 보도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일본 학생이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는데,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와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을 비교하며 두 사례 모두 동일한 교육과 경제적 지지를 제공했는데 전자는 왜 실패하고 후자는 왜 성공했는지를 물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그 두 사례를 나란하게 비교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참신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차이점을 발견하고 대답했습니다. 우선, 중국의 경우 소수민족과 한족이 하나의 나라에 속한 역사가 꽤 길지만 한국의 경우 일본을 삼국시대부터 전혀 다른 국가 및 민족으로 인식해왔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합병을 당했을 때 반발이 심했을 수 밖에 없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현재의 중국은 소수민족 또한 중국의 정식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당시 한국은 일본 제국의 입장에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병참기지로 여겨졌기 때문에 일본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동등한 정도의 교육과 경제적인 지지가 조선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소주제 4: 현대 사회에서 민족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찾을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민족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은 무엇이 있는 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일본 학생들은 일본에는 ‘덴노’라는 상징적인 존재가 있어, 일본인들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어준다고 언급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중국은 공산주의를 채택하였고 하나의 강력한 이끄는 지도부 (소위 ‘Leading Father’) 가 존재하여 국가 전체를 그 지도부가 이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학생 중 한 명은 혈통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도 괜찮은데 결국 핵심은 민족주의의 종류보다도 그 정도라고 발언했습니다. 지구 전체에서 나 한 명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결국 어떤 형태로든지의 그룹 만들기는 필수적이고 결국 나의 그룹과 남의 그룹을 구분 짓는 행위는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민족주의든 공산주의든, 그저 어떻게 하면 다른 그룹을 최대한 해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마무리 지었습니다.
최종 결론 및 마무리
결론적으로 이번 독서 토론을 통해 한중일 삼국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라고 깨닫게 된 사실은 민족주의가 각 국가에서 내부자들을 한데로 결속시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용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모두가 이러한 토론이 의미가 있었다고 느꼈고, 그 이유로 이번 기회를 통해서 평소에는 쉽게 말하지 못했던 각 국가의 민감한 역사 이슈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보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토론의 말미에 서경호 교수님께서 간단하게 코멘트를 해주셨는데, 우리 세대가 살게 될 미래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국가나 민족의 개념이 아닌, 가령 사람의 혈액으로도 개개인의 정체성이 정의되는 사회가 도래할 수도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 그룹 짓기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열린 생각거리를 던지시고 토론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구정모
BeST Winter Program 사전에 학생들의 전공과 관심 분야를 가능한 맞추어 서울대, 동경대와 북경대 학생들을 각각 1, 2명씩 포함한 총 9개의 팀을 꾸렸습니다. 각 조에서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한-중-일에 대한 조사와 탐구를 진행한 후, 이를 공유하는 최종 발표회를 했습니다.
Team 1. Comparative Study on East Asian Idol Culture
팀원: 박이현, Yamada Kyohei, Lu Wanqin, Shi Jiali
첫 번째 팀은 세 국가의 아이돌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했습니다. 각각 K-POP, J-POP, C-POP이라고 불리는 한국, 일본, 중국의 아이돌 그룹들을 비교 및 대조하고 각 국가에서 아이돌 문화가 자리잡기 위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어떠한 전략을 활용했는지를 탐구했습니다. 각국에서 아이돌 문화 발전 양상에 대해 조사하고 내린 결론을 공유했습니다.
Team 2. Various Countries, Various Love
팀원: 이제준, Ryota Watanabe, Zhou Zhou, Liu Dijia
비록 사랑이라는 것은 인류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지역과 문화에 따라서 사랑의 양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두 번째 팀은 이 사실에 착안해 세 나라에 나타나는 특별한 그 나라만의 사랑에 관한 현상에 대해 조사를 하고 비교하여 발표했습니다. 한국의 군대 문화로 생겨나는 이별, 유독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일본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이면, 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좋지 않게 보는 중국의 풋사랑에 대해 차례대로 설명했습니다.
Team 3. Six Things We Should Know about BeST
팀원: 정소영, Hamada Tomotaka, Zhong Guojie, Zhao Yiman
다른 팀들과는 다르게 3팀은 본 BeST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서울대에서 준비한 서울 편 프로그램의 여러 활동들을 정량적, 정성적으로 시각화했습니다.
Best Winter Program 참가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언어 분석 프로그램으로 분석했습니다. 단어 사용 빈도수를 바탕으로 다양한 결론과 비판 등을 도출해냈습니다. 결론으로 6개의 항목에 대한 장단점 그리고 보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Team 4. 3 Major Territorial Disputes in East Asia
팀원: 이승규, Ejima Norimasa, Xie Yun, Wang Ruikun
4팀은 자칫 민감할 수도 있는 영토 분쟁 및 문제에 대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영토 분쟁에 대한 정의를 시작으로 동아시아에서 현재 갈등의 소재가 되고 있는 동중국해 EEZ 분쟁, 독도-다케시마, 센카쿠-다오위다오 영유권 갈등을 차례대로 설명했습니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설명을 한 후, 당사국들의 각각의 입장을 정리하여 발표했습니다.
Team 5. Gender Inequality – Comparison of 3 Universities
팀원: 서유지, 조수빈, Baba Yusuke, Liu Xun
5팀은 양성 평등의 정의, 측정 기준, 그리고 더 나아가 서울대학교, 북경대학교, 동경대학교 내 성비를 조사하여 발표했습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대학교인만큼 세 나라의 성과 교육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었으며 각 대학교 성비를 설명할 때, 현상을 만든 원인도 덧붙였습니다.
양성 불평등(gender inequality)은 성에 따라 나타나는 평등하지 않은 대우나 인식을 일컫는데, 이는 크게 UNDP에서 만든 Gender Inequality Index 또는 세계경제포럼에서 만든 Global Gender Gap Index로 측정합니다.
Team 6. Demonstration in East Asia
팀원: 조시현, Ryota Kobayashi, Tian Huilin, Zhang Yuying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시위입니다. 한국 광화문에서 직접 시위에 나가 보기도 한 6팀의 학생들은 바로 이 시위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발표하였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각국 역사의 대규모 시위와 시위에 관한 헌법 조항들을 정리하였습니다.
Team 7. Regional Conflict in East Asia
팀원: 공지원, 김수민, Shibata Takumi, Luo Yanzhen
7팀은 지역 간 갈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한국이 영남 지역과 호남 지역 사이 갈등이 심한 것처럼 일본과 중국에도 비슷한 지역 간 갈등이 존재하는지 알아본 결과, 중국에는 보수적인 서쪽과 진보적인 동쪽 간의 갈등이, 일본에는 동해에 가까운 쪽과 태평양에 가까운 쪽으로 나뉘어 갈등이 실존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Team 8. East Asian Contemporary Art and Social Issues
팀원: 이윤서, 구정모, Aliaksandra Arbuzava, Cao Linjing
8팀에는 미술 관련 전공을 하는 서울대학교 이윤서 학생과 북경대학교 Cao Linjing 학생이 있어 자연스럽게 주제를 그 방향으로 잡게 되었습니다. 동아시아의 현대 미술과 그 현대 미술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조사와 탐구를 진행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3국에서 대표 현대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선정하였고 그 작품들이 미술적 가치를 넘어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정리하여 발표했습니다. 한국의 함경아와 믹스라이스, 중국의 Yuan Yunsheng과 Yue Minjun, 일본의 Murakami Takashi와 Yanobe Kenji에 대해 조사하였습니다
Team 9. Population Ageing in East Asia
팀원: 강현지, 송은지, Yagimoto Akihiko, Jin Di
마지막 팀인 9팀은 인구고령화 또는 고령화 사회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일본은 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시간이 꽤 흐른 나라이지만 그 뒤를 한국과 중국이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습니다. 유엔에서 발표한 한중일 65세 인구 비중 그래프를 살펴보면 일본은 인구고령화 추세/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는 반면, 한국과 중국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9팀은 각 국가가 실행하고 있거나 실행해야 할 방안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이제준
BeST Winter Program 사전에 학생들의 전공과 관심 분야를 가능한 맞추어 서울대, 동경대와 북경대 학생들을 각각 1, 2명씩 포함한 총 9개의 팀을 꾸렸습니다. 각 조에서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한-중-일에 대한 조사와 탐구를 진행한 후, 이를 공유하는 최종 발표회를 했습니다.
홍대 명동
첫날에는 대학생의 거리인 홍익대학교 앞 거리에서 학생들과 치킨을 먹었습니다. 마치 외국 친구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홍대거리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습니다. 일본의 시부야, 중국의 우다오커우가 있다면 한국에는 홍대거리가 있다며, 무수히 많은 대학생들로 부대끼는 서울의 낯설지 않은 저녁 거리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학생들과 명동거리를 거닐며 유명 드라마 및 영화에서 나오던 명소들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몇몇 친구들의 쇼핑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한국 화장품이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데 가격이 중국의 2~3배라고 하며 거리의 화장품 가게들에 정신 없이 화장품을 사는 북경대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명동, 종로 거리를 배회한 후, 심야의 청계천을 함께 구경했습니다.
롯데월드
주말 낮 시간에는 북경대 및 동경대 학생들과 함께 롯데월드 및 아이스링크를 다녀왔습니다. 규모로서의 차이는 있지만 대학생들이 자주 가는 놀이공원으로 소개하여 친구들이 서울에서의 자연스러운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함께 식사로 냉면, 보쌈 등을 먹었습니다.
소녀상 방문
중국과 일본 학생들은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스캔들과 관련된 어느 정도의 지식을 알고 있었습니다. 매주 수 십만 명이 시위하고 있는 상황을 매우 신기해하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 광화문에서 실제 시위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학생들과 함께 소녀상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일본 학생들이 오히려 더욱 관심을 가지려 했다는 점에서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DMZ, 북한 땅굴
중국에서는 북한을 방문할 수 있지만, 한국(남한)을 관광한 중국인에게는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더욱 까다로워 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 파주 DMZ에 방문해 북한의 땅굴도 보고, 통일 전망대에서 북한의 마을을 건너보았습니다. 북한이 항상 가까이 있다고 생각해왔던 중국 학생들에게 전쟁 중인 한국과 북한의 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중국과 한국의 관계는 꽤나 어려운 문제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SM타운
북경대 및 동경대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방문하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 연예기획사를 말합니다. 중국 및 일본에서 한국의 가수, 배우들이 활약하고 있고 특히 많은 중국 학생들이 한국 연예인들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이 공연하는 뮤지컬의 공연 티켓을 예매해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한국 연예인들을 조금 더 ‘한국에서’ 소개하고자, 대표 연예기획사인 SM의 SM타운을 함께 방문했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모르는 연예인들조차 중국 및 일본 학생들이 알고 있는 것을 보고 오히려 한국 학생들이 놀라워했습니다.
조시현
기획
기획 과정을 거치면서 세 나라의 역사를 비교하는 데에 쓰일 자료로 각국의 ‘중·고교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였습니다. 각 나라에서 같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해 접근한다면 보다 의미 있으면서도 불필요한 논란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 교과서를 실물 원서로 구하는 것은 남은 프로그램 기간 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활용하였습니다.
다음 문제는 ‘어떤 인물과 사건을 채택하여 비교할까’ 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난징대학살, 청일전쟁 등 우리나라 역사 교과과정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사건이라도 한·중·일 역사에 대한 공정한 분배를 위해 비교하려 했으나, 6분 남짓한 짧은 동영상에 소재를 모두 다루자니 수박 겉핥기식에 불과하고 논점이 모호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논의 끝에 ‘한국의 역사를 일본, 중국은 어떻게 배울까?’ 라는 주제로 결정하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다룰 법한 ‘광개토대왕, 발해, 도요토미 히데요시, 윤봉길, 6.25 전쟁’을 선택했습니다. 댓글로 밖에 소통할 수 없는 유튜브 매체상의 특성을 고려하여, 현재 첨예한 갈등의 중심에 있는 ‘독도’, ‘위안부’ 등은 다루지 않기로 판단했습니다.
촬영 및 제작 과정
“한국 역사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인물과 사건들에 대해서 저희가 제시어를 드리면, 각 나라의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속에서 어떻게 배웠는가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각자의 생각을 적는 것이 아니라, 주입식 교육에서 어떻게 배웠는지를 써주시면 됩니다.”
사회자의 안내 멘트를 시작으로, 다루기로 했던 주제들에 대하여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3시간가량 동안 서로가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한국사의 주요 인물 및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배웠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도 다시금 각국의 입장 차이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생각보다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자세히 다룬다는 사실을 깨달아 사뭇 놀라웠습니다.
결과
한 마디로 말하면, ‘보다 많은 사람에게 한·중·일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동영상 업로드 날짜로부터 2주 정도 경과한 현재(2017.3.7.) 조회수 35만, 7000개의 좋아요 및 2500개가량의 댓글이 등록되었고, 댓글의 내용 또한 사뭇 다양하고 진지하여 한·중·일 역사 담론에 대한 관심을 네티즌과 나누는 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 언론 ‘위키트리’가 <한·중·일 역사 비교 영상 프로젝트>를 기사로 작성하여, 페이스북 노출 120만회, 트위터 확산 31만회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참신한 기획이라며 응원하는 댓글들을 볼 때마다 참가학생들은 동아시아 역사 교류에 대한 의지를 다시금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사 내지 중국사를 중심으로 한 번 더 비교해달라는 댓글 또한 종종 있었다며 동영상 제작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하는 참가학생도 있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중·일 역사 문제는 껄끄럽고 민감한 주제이면서도,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루기에 조심스러운 주제이지만 그만큼 더 학문의 대상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 관문으로 매력적인 주제이며, 한·중·일 삼국의 대학생이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송은지, 김수민
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도쿄에 위치한 종교 시설로, 메이지 유신 이래 근대 일본의 전쟁에서 활약한 사람들을 숭상하는 시설입니다. 즉, 한국, 중국 등 주변국 침략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동경대 학생들의 안내에 따라 이치가야역에서 내려 야스쿠니 신사로 향했습니다. 한국사를 배운 입장에서 야스쿠니 신사의 정문을 보았을 때, 높은 기둥과 직각이 돋보이는 문의 모양은 비장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습니다.
러일 전쟁, 제 1차 세계 대전, 제 2차 세계에서의 전범들이 안치되어 있기에,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한 때 한국 국적의 포켓몬 트레이너가 야스쿠니 신사에 위치한 포켓몬 체육관을 점령해 큰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도 신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사범들을 안치 한 것과 모순되게도, ‘야스쿠니’는 ‘나라를 안정케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동경대 학생들은 신사를 함께 걸으며 주변 시설물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 군마, 군견상 등을 살펴보며 전쟁 미화에 동원된 요소들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전쟁 박물관이 어떤지 더 알아보고자 우리는 신사 안에 있는 ‘유슈칸’에 입장했습니다.
유슈칸은 쉽게 말해 일본의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는 목적의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 당시에 사용했던 무기와 각종 사료 등이 전시가 되어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전쟁 박물관과 흡사한 느낌이 듭니다. ‘제로센 전투기’ 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이 전투기는 일본의 극우 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이 만든 전투기라고 합니다.
유슈칸이 일본 최초로 만들어진 역사 박물관이라는 점도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일본이 전쟁의 미화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슈칸을 둘러보며 일본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새삼 되돌아볼 수 있는 뜻 깊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오오에도 온천
2월 20일, 동경대 친구들은 일본의 온천 문화를 소개해주었습니다. 도쿄에 있는 오오에도 온천을 방문하였는데, 들어갈 때 여러 가지 유카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습니다.
오오에도 온천은 족욕을 할 수 있는 야외 온천과 노천 온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에도 온센모노가타리는 도쿄의 인기 관광지로, 오다이바에 2003년에 오픈한 도쿄 최초의 “온천 테마파크”로 유명합니다. 지하 1,400m로부터 퍼 올린 천연 온천이 넘치는 욕탕, 맑은 하늘이나 별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노천 욕탕, 일본 정원에서의 발 욕탕 등 다채로운 온욕 시설이 완비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도쿄가 에도(江戸)라고 불리던 때의 오래된 거리를 재현한 관내에서 체험하는 본격적인 온천 입욕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온천의 실내도 나무로 장식되어 있고 조화와 등불이 어우러져 꾸며있어 언뜻 야외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일본의 전통 시장 거리의 느낌과 온천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던 뜻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사당
일요일 아침에 동경 BeST Program의 부주장격인 오사무라는 한국 학생들을 데리고 일본의 국회를 방문했습니다. 평상시에는 국회 내부까지는 출입이 금지되어있지만 오사무라가 다행히 사전에 방문을 예약해서 가이드(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진행된 가이드라 정작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까지 함께한 꽤나 수준 높은 국회 방문이었습니다. 일본 국회는 한국의 국회와 마찬가지로 양당체재가 아닌 복수당 체재로 이루어져있으며, 현재에는 아베총리의 자유 민주당이 그 의석을 장악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회의 출입문 근처에는 극좌와 극우의 시위대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국회 근처의 거리가 워낙 한적해서 그런지 시끄럽게 시위가 이루어져도 우리나라의 국회 앞 시위와는 산뜻 달라 보였습니다.
국회 주변에 덴노의 궁 및 궁을 둘러싸고 있는 공원이 있어 화창한 날씨에 힘입어 산책을 했습니다. 공원에는 마라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공원 둘레를 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사뭇 비슷했습니다.
동경대학교
2017년 2월 17일, 동경대학교의 코마바 캠퍼스에서 Welcome party를 한 뒤 동경대 학생들과 함께 캠퍼스를 구경하였습니다. 우리가 방문하였을 때 동경의 온도는 서울보다 높았지만, 강풍 때문에 생각만큼 따뜻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강풍에 모두들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코마바 캠퍼스 정문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정문에서부터 시작하여 동경대의 카페테리아를 구경하고, 캠퍼스 내 가장 큰 나무 밑에서 사진을 찍었다. 동경대 캠퍼스의 교실들도 둘러보았습니다. 코마바 캠퍼스의 교실은 한국 중고등학교의 교실과 느낌이 비슷하였습니다.
이어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여 동경대의 또 다른 캠퍼스인, 혼고 캠퍼스를 탐방하였습니다. 혼고 캠퍼스는 고학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건물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또한, 혼고 캠퍼스는 도쿄 내에서 가장 유명한 캠퍼스라고 한다고 합니다. 아카나 의학부 부속 병원,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에 그려진 연못 외에도, 야스다 재벌의 선조 인 야스다 지로가 기증한 야스다 강당이 있습니다. 혼고 캠퍼스는 에도 시대 가가번무사가 있던 곳으로 아카, 산시로 연못 등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많은 역사적 건축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경대의 캠퍼스는 지역 주민들에 의해 공원처럼 이용되기도 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두 캠퍼스를 붉은 벽돌의 건물과 연못, 거리의 나무들까지 아름다운 풍경들과 함께 둘러보고 나서, 충분히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주제1: ‘성진국’ 일본은 정말 ‘성진’국일까.
‘동경대학교 학생들 중 여자의 비율은 눈에 띄게 적습니다.’ 이 사실로부터 일본의 ‘성’에 대한 논의가 촉발됐습니다. 일본 학생들은 이에 대해 일본 사회가 고학력 여성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여성이 굳이 ‘동경대’까지 갈 이유가 없다고 많이들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결혼을 잘 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여성의 목표 치라는 통념이 일본에는 많이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한국 학생은 이러한 소극적인 여성상이 일본사회의 여러 측면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키하바라의 메이드 카페를 언급했습니다. 다른 한국 학생이 이러한 카페는 소극적인 여성상만을 상징한다기 보다는, 성에 대한 개방적인 분위기 또한 동시에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학생이 일본이 ‘성진국’인 만큼 성에 대해 개방적인 것은 맞는 것 같다며 이에 수긍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수긍하면서도 정말로 모든 성적 취향을 용인하는 지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일본 학생은 이를 부정했습니다. 성에 대해 개방적인 듯 보이지만, 모든 성적 취향을 용인하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여성, 남성에 대한 관념을 흐리는 동성애와 같은 성적 취향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소주제2: 일본인들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할 것이다?
한 한국 학생이 일본인들은 혼밥을 즐기기 때문에 ‘‘혼밥’ 하기 좋은 식당이 일본에 많아진 것이 아니냐고 물음을 던졌습니다. 이에, 일본 학생들은 극구 부인했습니다. 일본인들이 혼자 있는 것에 무척 민감하기에, 이를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소위 ‘혼밥하기 좋은 식당’이 많아졌다는 설명이었습다. 일본인들은 함께하는 것, 공동체를 매우 중시한다고 일본 학생들은 말했습니다. 이러한 답변에 꼬리를 물어, 공동체의 규칙을 매우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가치관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일본학생이 두 가지 원인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첫째로, 사무라이 시대 때 사무라이들이 칼을 다소 자유로이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칼을 맞을 위험이 있었기에, 규칙을 준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에도 시대에 공동체 내의 규율을 어긴 자를 따돌리는 ‘무라하치부’라는 풍습이 있었던 것을 그 배경으로 꼽았습니다.
하시!
학생들은 이러한 토의를 거치면서 다소 가볍게 생각했던 서로의 문화에 대해 검토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토의는 ‘하시’라는 개념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일본 학생이 ‘하시’는 젓가락을 뜻하는 동시에 다리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시’가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적용되는 지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토의에서 볼 수 있었듯이 다른 점도 많지만 모두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이렇게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하시’라는 다리가 존재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모두 ‘하시!’라고 외치면서 토의는 마무리되었습니다.
파친코[パチンコ]:일본의 도박게임.
중장년층 서민 남성이 주로 이용한다.
도박성이 낮다고 분류되어, 형법 상 도박으로 간주되지 않는 틈새 시장. 돈 대신 경품을 받는 것이 특성입니다. 초보자는 돈을 날리기에 좋습니다
가라오케 [からオケ]: 일본의 노래방.
‘일본인은 조용하다. 일본인은 잘 즐기지 못한다’는 편견을 깨준 공간.
Perfume- ‘Chocolate disco’, 나카시마 미카-‘유키노 하나’(한국: 박효신-눈의꽃)
TWICE-‘Cheer up’, 소녀시대-‘Gee’, 와 같은 노래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박이현(서울대학교)
군대에서 제대하고 한 학기,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보냈다.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말년 병장의 패기는 9월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사라졌다. 대학교를 다닌 시간보다 군대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고, 13학번 동기들은 하나둘씩 졸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무원 준비를 하는 친구, 은행 입사를 준비하려는 친구, 로스쿨에 가려는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렇게 한 학기를 어영부영 보내고 겨울방학이 되었다. 허송세월을 보내던 중 자유전공학부 게시판을 보게 되었는데, 게시판의 한 공고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것이 바로 동경대, 북경대 학생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수업을 듣는 프로그램, BeST Winter Program(이하 베스트 프로그램)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중국어나 일본어로 된 글을 읽고,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방학 때나 시간이 날 때면 틈틈이 중국어나 일본어 공부를 했다. 또 2년의 군 생활 중에 시간을 알차기 보내기 위해서 영어나 외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그 노력들이 마침내 빛을 볼 때가 온 것이다. 방학 내내 혼자서 우울하게 집에 틀어 박혀서 무얼 해야 하나 쓸데없이 고민하기 보다는 한 번 도전을 하자는 심정으로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갑작스럽게 공고가 난 프로그램이라서 참가하는 그 날까지도 내가 어떤 활동을 하게 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학기 중에 외국인 학생들과 수업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는데 수업 첫 날까지만 해도 그 정도의 가벼운 프로그램으로 생각했다.
한국에서 2주 간의 베스트 프로그램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언어 교육이다. 한국 친구들은 중급 중국어나, 초급 일본어를 각자 선택하고, 중·일 친구들은 초급, 중급 한국어를 선택해서 나흘간 수업을 들었다. 언어를 배우기는 상당히 짧은 시간이지만 강의가 소수로 진행되고, 원어로만 대화할 수 있어서 짧게나마 언어 학습에 대한 의지를 다시 북돋아 주었다. 두 번째는 강의이다. 민족주의, 문화, 유교, 경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각 국 학생들과 생각을 교환할 수 있었다. 영토나 역사 문제와 같은 다소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뜻깊었던 것 같다. 프로그램 마지막 날에는 수업을 통해 배운 것을 각 팀 별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는데 발표를 준비하면서 수업 시간에 미쳐 시간이 없어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팀원들끼리 깊게 나눌 수 있었다. 팀원들과 서로의 학교생활부터 매일 뉴스에 나오는 시사 이슈들까지 폭넓은 주제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현장 답사(field trip)이다.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를 읽고 영어로 토론하는 시간을 함께 가졌다. 김구 선생님께서 말하는 ‘민족’의 정의와 현재 동아시아 국제정치 상황에 맞는 민족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식적인 일정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만 2주 동안 심심하게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수업이 끝나면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서울 구경을 나섰다. 방학이라 특별한 일정이 없던 나는 대부분의 일정에 참여했는데 내가 생각한 테마는 ‘나의 서울’이었다. 경상도에서 20년간 살다가 서울에 3년 남짓 산, 내가 생각하는 서울을 보여주고 싶었다. 번화한 홍대거리, 신촌부터 남산, 이태원 등 유명한 장소에서부터 인사동, 북촌 등 한국적인 거리도 소개해주었다. 같이 지하철을 타고, 밥을 먹고, 2주간 거의 매일을 붙어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들과 친해졌다. 그 중에 몇은 정말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한국에서의 2주 간의 프로그램이 금세 끝난 것처럼 일본에서의 1주 역시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한국에서처럼 수업이 있었고 그 후의 시간은 자유시간이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수업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자유시간 쪽이다. 서울에서 내가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동경대 친구들에게 ‘나[自分]의 도쿄’
를 부탁했다. 시부야(渋谷)나 신주쿠(新宿)처럼 번화한 도쿄도 좋지만 그들이 사는, 생각하는 도쿄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고쿄(皇居) 근처에서 주말에 조깅하는 사람들, 야나카(谷中)에서 한가롭게 반찬거리를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평온해졌다. 아키하바라(秋葉原)는 소문대로 다양한 문화가 존재했다. 24년 간 살면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독특한 문화를 맛보면서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에비스(恵比寿)의 서점에서 CD 플레이어로 도쿄 친구들이 추천해준 J-POP의 맛에 흠뻑 빠진 것도 좋았고, 내 친구 야마다(山田)가 고등학교 때 자주 간 라면집에서 유자소금 라면을 먹은 것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비 오는 날, 강풍으로 인해서 전차가 끊겼는데도 요코하마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 비바람을 뚫고 몇 시간이나 헤매기도 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해가 지고 매일 저녁이 되면 다들 시부야에 모여서 술 한 잔씩 나누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의점에서 사 마신 맥주 한 캔과 가로등의 불빛과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일렁이는 시부야의 밤은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베스트 프로그램을 하면서 내가 얻은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은 ‘인연’이다. 국경을 초월해서, 언어의 장벽도 무색하게 할 만큼 소중한 친구가 생겼다. 지금 한국외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야마다는 한 주에 서너 번씩 만난다. 만나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베스트 프로그램의 추억, 서로의 친구들 이야기를 하는데 어색한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이제는 오래 만난 친구 같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서로 일본어, 한국어 공부를 봐주고, 저녁에는 같이 사우나를 갔다가 바나나 우유를 마시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아직 나의 베스트 프로그램은 끝나지지 않은 것 같다.
야마다가 입버릇처럼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 있다.
‘まあ、いいか。 まあ、いいか…。’
이대로도 좋다는 말이다. 지난 한 학기처럼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지금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누군가는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은 3학년이다. 들어야할 전공 수업도 한참 남았고 새로운 무언가를 할 기회도 엄청 남아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한중일 전문가가 되는 것도 내 자신을 꿈꾸기도 했다. 이번 3학년 1학기는 조금 더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베스트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나는 또다시 한 학기를 헤매지 않았을까.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신 자유전공학부 선생님, 교수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윤서(서울대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과 중국의 언어를 배우고, 각 나라의 문화를 교류하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그 동안 자유전공학부에서 제공한 프로그램에 참가한 경험이 적었던 점이 제게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대충 이랬었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처음 BeST Winter Program(이하 베스트) 신청서를 쓸 때 기분이 어땠는지, 아직도 잘 표현되지 않는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감정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만큼 베스트에 관심이 없었기에.
나는 일어에 대한 호기심을 꾸준히 지니고 있던 상태였으며 타 문화에 대한 관심 또한 항상 지대했지만, 무엇보다 사람과 장소를 가린다. 언어가 제대로 통하지도 않을 사람들과 어색할 선후배들, 겨우 22일 동안 뭐 그리 심도 있는 교류를 하고 큰 깨달음을 얻겠는가? 베스트에 지원한 가장 중요한 동기는 사실 이러하였다: 이거 해외현장학습 인정 된다며? 빨리 하나라도 더 해치워야 멀디 먼 졸업에 조금 가까워지겠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합격자 발표가 나고 프로그램에 관한 추후 사항들을 확인하다 보니 사뭇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지원할 때만 하더라도 불합격의 여부 자체를 생각지 않았기에 합격자 명단에 든 것은 매우 당연한 수순으로 다가왔지만, 내가 당황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있었다. 첫 째, 언어 실력. 자유전공학부 측 참여학생 대부분이 일어나 중국어 중 하나를 원어민과 준수하게 대화할 만큼 다루고 있었다. 난 이 상황에서 한치의 쓸모도 없는 불어를 가장 잘한다. 둘 째, 마음가짐.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과반수가 자발적으로 북경대와 동경대의 학생들을 잘 이끌어주고, 그들과 말 그대로 소통을 하는 것이었다. 낯가림도 심하고 동기 부여도 없는 내가 무슨 배짱으로 프로그램을 신청했던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트가 시작 된지 일주일 동안도, 아니 사실 그 보다 더, 일본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난 이 프로그램에 대해 마냥 회의적이었다. 현재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난 내가 뭘 하고 싶고 어떤 걸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일말의 방황도 겪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전공, 앞으로 업으로 삼을 일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가장 가치 있게 느껴졌고, 그 외의 시간은 내 사적인 재미들을 쫓는 것으로 채우고 싶었는데, 프로그램을 하게 된 이상 대부분의 내 시간을 방향성이 모호한 활동들에 할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2학점짜리 과목’을 위해 내가 할애해야 할 시간이 많게 느껴졌다.
누구는 수업과 토론을 통해 각 국가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고, 심도 있는 배움을 얻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난 단지 아무 생각이 없었고. 다만 서울대 측 프로그램이 끝나고 각 팀원마다 후기를 작성해야 됐기 때문에 그 동안 지녔던 불만들을 토로했다. 작성하고 나니 기분이 복잡했다. 내가 막무가내로 베스트에서 느낀 단점들만 주로 얘기했기 때문은 아니다.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난 불투명한 기획과, 2주라는 짧은 시간상 별 수 없이 애매한 차원에서 그쳐버린 배움을 아쉬워했을 것이다. 우리 팀의 동경대, 북경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베스트의 원활한 발전을 위해서라면 그리 쓰는 게 맞았을 것이다. 다만 내가 스스로에게 답답했던 것은 다른 자전 학생들과 달리, 내가 단 한번도 ‘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동아시아의 이슈들에 관해 사고하려는 노력을 가지거나, 북경대와 동경대 학생들에게 진정하게 관심을 갖고 위한 적이 없어서였다. 난 베스트를 상당히 기능적으로 대했다. 그런데 파주에서 <백범일지> 관련 토론을 진행할 때, 변화가 일어났다. 서유지 선배가 자칫하면 영양가 없는 토론이 될 뻔한 주제를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다듬고, 삼국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는 섬세한 진행으로 학생들을 이끌어나갔다. 그 덕분에 의미 있는 토론의 장이 생성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처음으로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일본에 가서는 마음가짐이 달라져서인지, 여행이란 게 주는 특별함 때문인지, 모든 게 순조롭게 잘 풀렸다. 동경에 도착하자마자 길거리의 나무를 위해 관리원들이 뿌리던 거름물을 모두가 정통으로 맞아서 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까지 내 밑바탕이 되었던 거북한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동경대 측 프로그램은 대부분 수업시간보다 자유시간이 월등히 많아서 자전 학생들은 물론, 동경대 친구들 그 자체들을 볼 수 있었다. 한국 친구들은 피곤해 할 때마저 항상 기운이 넘쳐서 나까지 긍정적인 기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일본 친구들은 배려심이 깊고 행동이 세련돼서, 비록 한국 친구들보다 친근감이 덜할지언정 그런 격식이 마음에 들었다. 동경대 코마바 캠퍼스에서 환영파티를 하러 어느 건물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분들은 신발을 반대 방향으로 벗어서 놓곤 하더라. 나도 덩달아 따라 했는데 문득 한국에서는 그리 신발을 놓는 게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점이 기억났다. 신발을 안쪽으로 향하게 놓으면 귀신보고 우리 집을 떠나달라는 암시가 되기 때문에 흉조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8일간 귀신이 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잠시 생각을 했다.
학기가 시작한 지금 들어서는 굳이 매일 미술 관련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어차피 날마다 수업 차원에서, 즉 반 강제적으로나마 그 방면으로 지속적인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강박이 훨씬 덜하다. 그러나 날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는 방학 때에는 거의 매일 사소한 낙서라도 하나 하고 잠드는 버릇을 들였다. 동경에 가서 유일하게 마음에 걸렸던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지친 상태로 침대에 누우면, 아무리 뭔가를 그리려 해도 그다지 잘 그려지지 않았다. 동경을 그릴까도 했으나 이미 내 눈에 완벽한 피사체들이 카메라에 담겨있는데, 굳이 매체를 바꿀 당위가 있는가?
어릴 때부터 다양한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고 그 반응이 심하게 나타났다. 처음 일본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는 소바(메밀국수)를 몇 입 먹고, 순식간에 온갖 증세와 함께 식도가 부어 상당히 위험했던 적도 있다. 출국 전날 먹은 ‘야키니쿠(고깃집)’ 식당에서 갑작스러운 음식물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는데, 주변 친구들이 너무나도 세심하게 챙겨줘서 하필 마지막 날인데 폐를 끼쳐버려서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 그 중에서도 서울에서부터 쭉 팀이었던 벨라루스의 사샤와, 동경대 측 대표 학생이었던 노리가 극히 사소한 것마저 신경을 써주어 무사히 알레르기를 가라앉혔다. 고마움의 표시로 성급하게나마 둘을 각각 그려서 작별 선물로 줬는데, 여태까지 내가 그린 주변 인물들 그림 중 가장 자발적으로 그려진 축에 속했다. 베스트 초기에 심히 결여되어있던 나의 자발성을 마지막이 다가와서야 온전하게 찾은 느낌이었다. 호텔방에서 밤새 그칠 줄을 몰랐던 옆 방 친구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잠들었고, 무사히 다음날 서울로 돌아왔다.
일본풍경의 필터 낀 색감이 좋다. 나리타 공항에서부터 도쿄역까지 이어지는 공항버스, 그 경로가 좋다. 지하철의 청결함과 고요함, 낮고 수많은 손잡이들이 좋다. 질리도록 먹어도 질리지 않았던 편의점 푸딩이 좋다. 50엔의 정 가운데 구멍이 좋고, 유카타의 수려함이 좋다. 긴자(Ginza)거리의 건축물들에서 처음으로 사치가 역겹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느꼈고, 동경대 혼고(Hongo) 캠퍼스의 잔디가 따스했으며, 시부야 광장의 시궁쥐들이 기괴하게 풍경과 어울렸다. 귀국하기 이틀 전, 미리 공식적 이별파티를 하고 시부야에서 취했다. 그 밤 속 도심에서, 주사로 일본 친구한테 얻어 함께 핀 담배 맛이 좋았다. 난 감각에 취약해서 좋은 건 좋다고, 싫은 건 싫다고 밖에 표현을 못한다.
야마다 쿄헤이(山田 恭平)
대학생은 고달프다. 해야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막상 무엇을 해야할 타이밍이 되면 망설이게 된다. 대학 2년간 나는 학교 수업이나 자습으로 한국 문화나 한국어 공부를 꽤나 열심히 했다. 하지만 한국에 어학 연수를 간다거나 국제 교류의 기회가 생기면 시간을 핑계로 미루거나 취업을 위해 영어 공부를 하는데 집중했다. 그러던 와중에 ‘베스트 프로그램’이 동경대 사이트에 공지되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졸업할 것 같았다. 2016년 연말의 내 선택은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베스트 프로그램은 동아시아 3 국을 대표하는 대학의 학생들 간의 상호 이해를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처음 프로그램에 대한 공고를 보았을 때 어떤 프로그램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 학생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 친구들의 부지런함은 들은 적이 있었고, TV에서 가끔 보도되는 “반일”태도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에 대한 이러한 예상은 대체로 옳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들의 이모저모를 더욱 알게 되었다. 매일 6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공부하는 중국 친구들과 군대에 갈 때 여자 친구와 헤어진 한국 친구들의 삶에 한 걸음 다가감으로써 그동안 당연히 ‘보통’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생활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게되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속담처럼 내 주변의 생활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다른 누구의 생활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프로그램에서 얻은 교훈은 보통이라는 부를 수 있는것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중국과 한국의 친구들의 생활과 이때까지 나의 생활을 비교해보면 모두 저마다의 ‘보통’일 따름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간의 나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끝없는 경쟁 속에서 누군가와 항상 비교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항상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특별히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당신의 스펙은 무엇입니까?“
시험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점수와 이력서에 별 것 아닌 한 자(字)에 목매면서 눈에 보이는 결과에 안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현실은 눈에 보이는 실적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당연히 알고 있는 말이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3주 간, 베스트 프로그램을 하면서 나는 멤버들과 소중한 시간과 많은 생각을 공유했다. 길고도 짧은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각각의 생각과 마음을 알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출신지도 어학능력도 상관없었다.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은 영어로 대화를 하고, 조금 배워 서툰 한국어와 표정과 몸짓으로 생각을 전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살아가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언어도 문화도 가치관도 경험도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자신의 아는 세계 속에 갇혀있던 우리들 마음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 확실히 생겨났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결실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얻었다. 바로 지금 눈 앞에 있는 친구들이다. 우리는 국경을 넘어 많은 친구를 얻을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지금 한국 외국어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헤어진 지 단지 며칠 만에 재회한 서울대의 친구들은 한국어말이 서툰 나를 매우 환영해주었고 나를 개강파티 자리에 초대해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초대였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받았다. 나의 한국 생활까지 도와준 정말 소중한 형이 생겼다. 나의 한국어 공부도 도와주고 따뜻한 방에서 재워주는 이현이 형은 매일같이 만나고 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감사합니다!
또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한국과 중국에 대한 인상도 다소 바뀌었다. 중국은 더 이상 단순한 옆 나라가 아니다. 지금은 내 친구들이 태어나서 살고 있는 나라다. 그리고 한국을 떠올리면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우리는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과 부대끼면서 우리를 서서히 만들어 나가면 된다. 그런 점에서 이제껏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의 길에 베스트 프로그램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진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른다. 미래의 어느 날, 오늘의 이 프로그램의 값진 경험이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준 관계자 여러분께 많은 감사를 표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jima Norimasa (동경대)
I participated in a joint project “BeST Program” of Beijing University,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The University of Tokyo during February. It is said to be “BeST” with the initials of Beijing, Seoul and Tokyo. This project was held for 3 weeks. All the members who joined this project spent first 2 weeks studying at SNU and then students of SNU and UT spent rest of 1 week in Tokyo. Students from UT where very impressed of English conversation skills of SNU and BU. We UT students tried our best to communicate with SNU and BU students in each way using our clumsy English skills. Some of the UT students were communicating with SNU students in Korean.
The days in South Korea were very exciting for me. I participated in the impeachment demonstration of President Park with some SNU students. I was very surprised to the passion of people who joins the protest. Since political movements are prohibited by Communist government in China, I also found it interesting to see and know how Chinese students react to the political protest. When I went to the DMZ (Demilitarized Neutral Zone)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during the project, I felt mournful to the tragedy of confrontation between the same “朝鮮民族”. I heard that there are lots of families that are still separated in north and south because of the Korean War. It was too painful for me to imagine the situation that killing among family and friends. I sincerely wish that the confront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will be settled peacefully as much as possible. I also had a look at the statue of comfort woman “従軍慰安婦像”, that has great influenc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Korea. Although I am not sure which claim is near from the truth in my little knowledge, I found it painful to perceive that the victims are always innocent people, during reckless wars. We talked about various topics among three countries. We found many difference from each other while we are talking about cultural aspects such as foods, clothes, residences, music, and so on. We also argued about the historical man”金九”, the leader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who fought against the Great Empire of Japan during the WWⅡ. In addition, we discussed the territorial issues among Japan, China, and Korea. It was very precious for me to exchange opinions and ideas directly with the students of each country.
It was valuable time for me to think about my own career and future during this project. I determined to major in Japanese history from this April. A lot of historical knowledge that I leaned during my high school days contributed to make friends with each other. I enjoyed talking about “世宗” and “李舜臣” with Korean students, and also enjoyed talking about “三国志” and ”紅楼夢” with Chinese students. Talking each other’s history is one of the way to express each other’s sincerity. I learned that understanding each other’s history can be proof of trust that respecting each other. I became very proud of my decision to major in Japanese history at rest of my life in UT. It was a valuable for me to gain certain confidence in my past steps and the steps I will step forward from now.
I really had fun time spending with SNU and BU students. Although I learned more things than I expected before participating in this project, the most important thing was very simple. The best learning for me was “liquor, art, and love exceeds the borders!”
We can easily be friends by drinking delicious liquor, chatting about romantic love, appreciating wonderful music and arts!
There are two main meanings in Japanese word “はし”. One is “bridge(橋)” and another is “chopsticks(箸)”. Although various differences exist among Japan, China, and Korea, we “East Asians” share same culture using chopsticks(箸) when we eat foods. I think it is our mission to share wise wisdom like “はし(箸)” to overcome various conflicts and gaps, and become“はし(橋)”the bridge among three countries.
Zhongguojie (북경대학교)
To be honest, it’s an honor for me to join this program and share fourteen days with 35 students from three countries. We had a very good time learning about each other’s cultures, languages and thoughts. Although we can have many stereotypes about the other countries before this program, I think many of them have gone away after fourteen days’ communication. What’s more, we developed really good friendships and we believe good cooperation must be made among three countries.
When we talked freely after classes, I could feel that we were all interested in the other two countries, but the only way we can learn about the other countries is from media, which is, in some ways, inaccurate or unreal. And I think this program provide us a good opportunity to learn that by ourselves. And I really appreciate that discussion about Kim Gu’s autobiography, during which we talked about the difference of nationalism between that age and now. It’s really inspiring and thought-provoking.
While this program is meaningful and leaves us a very good memory, it is a pity that the time is so limited that we could not enjoy more. The language classes are interesting, but we can only learn about the pronunciation and some simple vocabulary in five days. The topic of the afternoon class is very meaningful and worth discussing, but we cannot go deeper and talk more due to the lack of time. And I think it would be a good idea to let us know the topic of the afternoon class one or two days ahead, which may provide us with enough time get familiar with that. And for the discussion, although Kim Gu is a great man, it’s hard to finish reading his autobiography in two days, maybe a little more time would be better.
Well, in a word, this is really the best program, and I believe it would be even better in the next few years! These fourteen days we spent together would be one of the best memories of mine, I’ll never forget those happy moments! Best wishes to the students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The University of Tokyo! Best wishes to the BeST program!
Collective Action for Mobility Program of University Students in Asia
Korean Council for University Education
23F. Daesung Dpolis-A, 606 Seobusat-Gil, Geumcheon-Gu, Seoul, 08504, Korea
TEL +82-2-6919-3913/3915
The Asian Consortium for Excellence in Liberal Arts and Interdisciplinary Education
College of Liberal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3F. 220, 1 Gwanak-ro, Gwanak-gu, Seoul 08826, Korea
TEL +82-2-880-9547
COPYRIGHT (C)2021 SEOUL NATIONAL UNIVERSITY.
ALL RIGHTS RESERVED.